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효천(孝阡)에서 한밤중에 짓다

추읍산 2009. 11. 24. 17:54

孝阡 夜作 효천 야작


효천(孝阡)28)에서 한밤중에 짓다

 

김유근(金根 1785~1840)


殘燈明發涙汍  잔등명발루환란   

霜露凄凄曉夜寒  상로처처효약한 

昨日孩提今已老  작일해제금이노   

何時言笑更承歡  하시언소갱승환   


꺼지는 등불 밝아오는 새벽 눈물은 주럭 주럭

서리와 이슬 내려 내 마음 처량하고29) 새벽은 싸늘하네

어제의 어린애가 지금 이미 늙었으니

언제 해맑은 모습으로 부모님을 다시 모실까


泉臺不隔幽明故  천대불격유명고   

風樹無回歲月闌  풍수무회세월란   

來世願將諸弟妹  래세원장제제매   

斑衣繞膝樂團圞 반의요슬락단란   


무덤이 이승과 저승을 나눌 수 없고

풍수지탄(風樹之歎)30)이 흘러가는 세월 돌이킬 수 없구나

바라보니 내세엔 형제자매 모두

색동옷31) 입고 부모님 무릎에서 단란하게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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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효천(孝阡) : 경기도 여주(驪州) 효자리이다. 작가의 어머니 청송 심씨(靑松 沈氏)는 심건지(沈健之)의 딸로 1828년(순조 28), 작가 44세) 8월에 죽었다. 아버지 김조순은 1832년(순조 32 . 작가 48세) 4월 3일에 죽어 6월에 여주 효자리에 장사 지냈다가 1841년(헌종 7) 이천(利川) 가좌동(加佐洞)으로 이장하였다.


29)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죽은 부모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것을 말함.


30) 풍수지탄(風樹之歎) : 고어(皐魚)가, "나무는 잠자코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하려 하나 기다리시지 않는구나. [ 樹浴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불대]" 했다. <「한시외전(韓詩外傳)9>


31) 색동옷 입고 : 엣날 초(楚)나라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70세에 양친을 모시고 효도를 하였는데, 부모 앞에 어린애처럼 보이려고 색동옷을 입고 어리광을 부렸다. <「북당서초(北堂書鈔)」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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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작가 황산(휘 유근)이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효지리(윗글에서는 孝阡이라 하였다)의 부모님 묘소를 찾고 지은 글이다. 때는 1828년 생모(生母)인 청양 부부인 심씨 장례를 치르고 그곳을 찾아간 것인지, 아니면 1832년 생부(生父)인 영안 부원군(휘 조순)을 장례 치르고 두 분이 합장 된 이후 찾은 것인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언제 해맑은 모습으로 부모님을 다시 모실까 라고 하신 것을 보면 두 분 운명 후로 부원군 장례이후인 1832 년 후반기가 아닐까? 느낌이 저의 6대조 김용순(계통상 김유근의 부친)과 풍산 홍씨 할머니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새벽녘이라고 했으니 그곳 묘막(부친 김용순의 묘소를 관리하는 곳)에서 하룻밤을 숙박하고 새벽 일찍 성묘길에 나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