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 6

추읍산 2009. 12. 8. 20:01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60

 

 

47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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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p296~297

6. 김용순(金龍淳)이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 6

(1820. 12. 4)

 


還家尙有日 寒事己酷 侍況間復如何  馳念不己  此處皆一樣 齒疼又作

환가상유일 한사기혹 시황간복여하  치념불기  차처개일양 치동우작


進食極艱 到底老態  奈何  公擾去益煩  盖綠酬接之不如前耶 可悶可悶

진식극간 도저노태  내하  공요거익번  개록수접지불여전야 가민가민


福奴行今回程  而權 生今日果如期入去耶 俱爲係念 歲色漸暮 處處戀戀

복노행금회정  이권 생금일과여기입거야 구위계념 세색점모 처처연연


不可勝言  歸情己動 事事交止  奈何 褒貶等 第使傍人收送可也 燈下不一

불가승언  귀정기동 사사교지  내하 포폄등 제사방인수송가야 등하불일


庚臘小望夜  父

경랍소망야  부


집으로 돌아가고 여러 날이 흘렀구나. 추위가 너무 심한데  어른 모시고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이곳은 모두 한결같다. 그러나 치통이 다시 일어나 음식을 먹는 것이 매우 어렵다. 노환이 깊어서이니 어쩌겠느냐. 공무는 갈수록 바빠지느냐? 그리고 손님 응대는 예전 같으냐? 매우 걱정이다. 복노(福奴)는 지금 돌아가는데, 권생(權生)은 오늘 정해진 기약대로 들어가느냐? 모두 세세히 신경이 쓰인다. 한 해가 저물어 가니 모든 일들이 바빠져 이루 말할 수 없다. 돌아가고픈 마음은 있으나 일이 바쁘니 어찌 하겠느냐? 포폄(褒貶)5) 등은 다만 거두어 보내도록 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등불 아래에서 쓰니 자세히 쓰지 않고 이만 줄인다.


1820년 12월 14일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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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폄(褒貶): 인사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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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1820년(순조 20)이면 189년 전이다. 1년 중 가장 추운 때인 양력 1월 중순경에 쓰신 편지이다. 집이 그립고 온 가족과 함께 하시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도 쌓이는 공무에 온 힘을 다 하시는 모습(지금까지의 편지를 보면) 이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67세로 연로하시어 노환이 있으셨는데 왜 객지인 황주 목사로 나가 계셨을까? 할아버지는 4촌 동생인 영안 부원군 김조순 보다 정계에 먼저 출사(出仕 . 참조 : http://blog.daum.net/0113508344/4719225 )했고 정경(正卿 : 정 1, 종 1, 정 2품)을 하실 학덕과 식견이 있었음에도 당시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은 점은 김조순의 순조 대왕 보필시기(1804~1832)가 깨끗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때(1820년, 순조 20)는 아들 김유근이 좌부빈객을 명받아(1820년 9월 19일) 근무할 때이고 삼청동의 백련사에 계실 때여서 편지를 통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로부터 3년도 못 사시고 1823년 운명하십니다. 


생부(生父)인 김조순과 부친(父親)인 김용순의 양쪽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그때 황산(김유근)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양쪽 모두 지극한 효성으로 임했을 것이다. 서찰 내용에서 어른은 김조순을 말한다. 그때 부자간에 오고 간 편지 중에 황산 김유근의 편지도 같이 있어야 하는데 분실되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