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조순(金祖淳)이 김유근(金유根)에게 보낸 편지 5

추읍산 2009. 12. 28. 20:34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역사관> 소장.     도록, p69

 

 

46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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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p303

 15. 김조순(金祖淳)이 김유근( 金逌根)에게 보내는 편지 5


吳歷晤斗閣 今纔出來 而人言渡江當不暮耳 金化內行事 俄在悤忙未悉而起耳

오역오두각 금재출래 이인언도강당불모이 금화내행사 아재총망미실이기이


吾之自日前勸其挈去  自有其意 則悍然不顧 豈可乎哉 當面而尙如此 則背面

오지자일전권기설거  자유기의 칙한연불고 기가호재 당면이상여차 칙배면


其肯思我言  我生之前尙如此  則我死之後  殆將不記其父之爲何人  人之所以

기긍사아언  아생지전상여차  칙아사지후  태장불기기부지위하인  인지소이


異於禽獸者  則有父子之倫 不然 去獸當幾何  在家而不知順父母之心

이어금수자  칙유부자지륜 불연 거수당기하  재가이부지순부모지심


則事君而能盡其分  必無之理也 汝輩旣不欲以父侍之 吾亦何苦而必望其爲子乎

칙사군이능진기분  필무지리야 여배기불욕이부시지 오역하고이필망기위자호


不如路人之初無  相關而己耳  不具

불여로인지초무  상관이기이  불구


나는 두각(斗閣)10)에 들러 만나 이야기를 하고 방금 나왔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강을 건너도 날이 저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김화(金化)의 내행(內行)은 접때 내가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떠났다. 내가 일전부터 데리고 가라고 권했을 때는 다 뜻이 있었던 것인데, 고집스레 말을 안 들었으니 가당키나 한 일이냐? 내 눈 앞에서도 이런데 내가 안 보는 곳에서는 어찌 내 말을 염두에나 두겠느냐. 내 살아 생전에도 이러한데 내가 죽고 나면 아버지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이나 하겠느냐? 사람과 금수(禽獸)가 다른 까닭은 부자(夫子)의 윤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과 얼마나 차이가 있겠느냐? 집안에서 부모의 마음을 고려할 줄 모르니 임금을 섬김에 그 직분을 다 할 수 있을 턱이 없다. 너희들이 아버지로 대하지 않는데 내가 무엇하러 애써 너희들이 자식되기를 바라겠느냐? 원래부터 아무 상관없는 모르는 사람만도 못할 뿐이다.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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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두각(斗閣): 의두각(倚斗閣), 1827년에 효명세자가 창덕궁에 건립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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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황산(黃山)이 생부(生父)이신 영안 부원군에게 심히 꾸지람을 듣고 있다. 아무래도 부자간에 순리()가 어그러진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꾸지람은 부자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글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도록 p36~37의 편지, 해제 편에서 집필진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생부로서 쓴 편지들이기 때문에 형식적 제약이 없이 이렇게 자유롭게 썼을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다음 편지가 그 중의 하나다.


위 편지에서 「김화의 내행(內行)은 ~~ 원래부터 아무 상관없는 모르는 사람만도 못할 뿐이다. 」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앞에 놓고 꾸짖는 모습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감정을 매우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런 내용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사신(私信)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