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편지

김병덕(金炳德)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1

추읍산 2010. 12. 21. 16:52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98

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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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김병덕(金炳德)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1

 

此日調節如何 從七兒積月漸鑠之餘 竟生大病 自夜精神雖不至全無  不能起座

차일조절여하 종칠아적월점삭지여 경생대병 자야정신수불지전무  불능기좌


不能醻酌 全身汗透 且以嘔氣 勺水不入 未知此何症祟 而見狀慮無不到 萬萬悶

불능수작 전신한투 차이구기 작수불입 미지차하증수 이견상려무불도 만만민

 

然 橋夫專送 黃醫卽刻起送 使之罔夜來見 如何如何 心神薰惱 不可拖長耳 不

연 교부전송 황의즉각기송 사지망야래견 여하여하 심신훈뇌 불가타장이 불비


三月卄三日 炳從

삼월입삼일 병종


요즈음 병중(病中)의 안부는 어떠하십니까? 제 일곱째 아이가 여러 달 동안 원기가 완전히 빠져 지내던 끝에 마침내 큰 병이 생겨, 지난밤부터 정신이 완전히 나가지는 않았지만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대꾸도 못하고 있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젖고 구토기도 있어 물 한 모금도 못 넘기고 있는데, 이것이 무슨 병인지 모르겠습니다. 상태를 보고 있자니 걱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너무나 걱정됩니다. 가마꾼을 특별히 보내니 황의원을 즉각 보내어 밤을 가리지 말고 와서 보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심신이 바싹 타고 걱정되어 길게 쓸 수가 없습니다.


3월 23일 병종(炳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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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김병덕(金炳德)과  김병주(金炳㴤)는 4 촌간이다. 두 분은 철종, 고종 때에 출사하셨던 분들인데 글 쓴 연도(年度)가 적혀 있지 않아 추리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옛날에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지금 같으면 충분히 치료할 수 터인데 내용을 보니 안타깝다. 이후 병의 차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청백리로 이름있는 김병덕은 어떤 분일까? 이를 아래에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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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덕[ 金炳德 ]

 

1825(순조 25)∼1892(고종 29).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일(聖一), 호는 약산(約山).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명순(明淳)이며, 아버지는 영의정 흥근(興根)이다.


1847년(헌종 1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대교(待敎)가 된 뒤 안동김씨의 세도정권 아래 홍문관부제학·이조참의·이조참판·공조판서·예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지냈다. 1866년 대사헌, 1867년 이후에는 세 차례나 이조판서를 지냈다.


1879년 병조판서, 1880년 통리기무아문당상(統理機務衙門堂上)에 오르고, 곧 이어 평안도관찰사·수원부유수·독판군국사무(督辦軍國事務)가 되었다.


1891년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으며, 청렴결백한 명재상으로 칭송받았다. 저서로는 ≪속간고 續諫考≫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참고문헌≫ 高宗實錄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참고문헌≫ 日省錄

≪참고문헌≫ 國朝榜目

≪참고문헌≫ 梅泉野錄.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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