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04
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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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p328
50. 김정균(金定均)이 김병주(金炳㴤)에게 보낸 편지 2
(1883.1.24)昨日千福便上書 伏想今晩下鑑矣 轎軍回便似在昨日 而尙今不來 十八以後 伏
작일천복편상서 복상금만하감의 교군회편사재작일 이상금불래 십팔이후 복
未承下書 下懷悶菀 去益難堪 伏末審日間氣體候更若何 寢啖別無添損 諸家亦
미승하서 하회민완 거익난감 복말심일간기체후갱약하 침담별무첨손 제가역
爲均寧 伏慕區區 無任下誠 校洞兩次祀事 未得往參 愴蹙彌切 子眠食無恙 而
위균녕 복모구구 무임하성 교동양차사사 미득왕참 창축미절 자면식무양 이
昨又往謁安洞 則過夜諸節 果無損度 伏幸伏幸 當於再明發行伏計 而桂田墓直
작우왕알안동 칙과야제절 과무손도 복행복행 당어재명발행복계 이계전묘직
絲伊 日前有渠緊關上來 今方下去云耳 姑不備白
사이 일전유거긴관상래 금방하거운이 고불비백
癸未正月二十四日 子 定均 上書
계미정월이십사일 자 정균 상서
어제 천복(千福) 편으로 올린 편지는 오늘 밤에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교군(轎軍)들이 돌아오는 것이 어제라고 알았는데 오늘까지 아직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18일 이후에는 보내신 편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되고 울적함을 갈수록 견디기 힘듭니다. 그동안 안부는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주무시고 드시는 것에 별 탈은 없으시며, 집안 식구들도 두루 평안하신지 그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교동(校洞)의 두 차례 제사에 가서 참여하지 못하여 슬프고 죄송스러움이 더욱 간절합니다. 저는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어제 다시 안동(安洞)에 가니 간밤에 탈 없이 지내셔서 매우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모레 출발할 계획입니다. 계전(桂田)의 묘지기인 사이(絲伊)가 일전에 긴요한 일이 있어 올라왔다가 지금 내려간다고 하기에, 잠시 쓰고 이만 줄입니다.
1883년 1월 24일 아들(定均)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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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추읍산)가 쓰는 글
김정균(金定均)은 1884년 갑신정변 후 金定圭로 개명되었다. 계전(桂田)은 지금의 양평군 개군면 계전리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저의 8대조 김달행(金達行)의 둘째 아들 김이중(金履中,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부친)의 묘역이 자리 잡은 곳인데 그곳 묘지기 사이(絲伊)가 상경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김정규가 부친인 김병주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때 고조할아버지(김병주)는 계전리 근처인 앙덕리에 계신 것으로 판단되는데 1882년 6월부터 이어지는 겨울을 그곳에서 보내신 것 같았다(1882년(고종 19) 6월 임오군란 때 앙덕리로 내려오셨다.)
참고: http://blog.daum.net/0113508344/4719233
위 편지 쓸 때( 1883년 1월 24일) 서울에 계셨던 증조할아버지(金定圭)는 선교관(宣敎官 ) 이었다고 고종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계전리 묘지기인 사이는 어느 분일까? 교동의 두 차례의 제사에 참석 못 하셔서 죄송스럽다고 하셨는데 교동은 하옥 할아버지(金左根)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위 편지 쓸 때는 사영 할아버지(김좌근의 아들 金炳冀)께서 1875년 운명하신지 8년밖에 안 되었으므로 그 아들인 김용규(金用圭) 할아버지께서 교동에 사셨을 것으로 생각한다(하옥의 증손자이신 세마(金升鎭) 할아버지는 계동에 사셨다). 참석 못한 제사 주인공은 하옥(김좌근) 父子를 가리키는 것 같았는데 위 편지 쓴 시점을 기준으로 자료를 조사하여보니 다음과 같았다.
김좌근(金左根 1797, 12, 4~1869. 4, 25)
배 해평 윤씨(1795년~ 1858, 2, 11)
김병기(金炳冀, 1818, 6, 13~1875, 1, 16 )
배 의령남씨(1819~1851, 7, 4 )
후배 온양정씨(1834,~1880, 4, 29)
안동(安洞)에는 누가 사셨을까? 위 편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1883년(고종 20) 2월 17일 김정균이 김병주에게 보내는 편지 3을 보면 안동 종숙모 님께서 어제 유시(酉時)에 돌아가셨다고 적고 있는데 족보를 보고 확인하니 이는 약산 김병덕(約山 金炳德 1825~1892)의 후배 정경부인 전주유씨(後配 貞敬夫人 全州柳氏) 이셨습니다. 이로써 안동에는 약산 할아버지의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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