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효천(孝阡)에서

추읍산 2011. 1. 21. 15:16

 

孝阡 효천


효천(孝阡)97)에서


김유근(金逌根 1785~ 1840)


一訣慈顔五閱春 일결자안오열춘 어머님을 떠난 뒤 다섯 해

音容知昔夢非眞 음용지석몽비진 목소리 얼굴 여전하시니 꿈은 현실이 아니구나

弟兄念切提携日 제형염절제휴일 형제들 어울렸던 생각 간절하고

子母恩深顧復辰 자모은심고복진 어머님 길러주신 은혜 깊구나

隱痛難忘嗟所賦 은통난망차소부 깊은 아픔 잊기 어려워 슬프게 읊조리니

至情欲訴竟誰因 지정욕소경수인 지극한 마음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氷魚雪笋生前事 빙어설순생전사 얼음 속 물고기, 눈 속 죽순98)은 생전의 일이니

沒世多慚不泊身 몰세다참불박신 평생토록 그렇게 못해 참으로 부끄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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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효천(孝阡) : 주 28) 참조.

 

98) 얼음 속 물고기 눈 속 죽순 : 효성이 지극함을 말한다. 『진서(晉書)』33 「열전」3 왕상(王祥) 조항에, "왕상(王祥)은 효도가 극진하였다. 한겨울에 어머니가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여 강에 가서 옷을 벗고 얼음 깨고 고기를 잡으려 하자, 잉어 두 마리가 얼음 위로 뛰어나왔다." 했고 『삼국지(三國志)』48 「삼사주전(三嗣主傳)」손호(孫皓) 조항 주석에,"맹종(孟宗)의 어머니가 죽순을 좋아하였는데 겨울이라 죽순을 구할 수 없었다. 맹종이 대숲에 들어가 슬피 탄식하니, 죽순이 돋아났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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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작자인 김유근에게는 두 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부친: 김용순(金龍淳 1754, 2, 5~1823, 4, 14)

모: 풍산홍씨(豊山洪氏 1752~1832, 8, 27)


생부: 김조순(金祖淳 1765, 8, 23~1832, 4, 3)

생모: 청송심씨(靑松沈氏 1766~1828, 8, 11)


윗글에서 어머님을 잃은 슬픔을 적고 있는데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1832년에 돌아가신 풍산 홍씨는 아닌 것 같다. 1828년 생모이신 부부인 청송심씨께서 운명하신지 햇수로는 5년이 되고 아직 생부이신 김조순이 생존하시던 1832년 이른봄이 아닐까?

 

효천(孝阡)은 지금의 여주군 흥천면 효지리인데 그곳을 찾아 어머님 묘소 앞에서 슬픔을 표출한 것이리라(본 도록 p360의 효천에서 한밤중에 짓다 에서는 부모님이라고 적혀 있어 그때는 김조순 운명 이후 같다.)

 

그런 할아버지께서도 1840년 운명하시고 이곳에 모셔졌는데 그리하여 그곳에는 참의공 김용순, 영안 부원군 김조순, 황산 김유근의 묘역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1841년 영안 부원군 묘역은 이천시 부발읍 가좌리로 이묘하였고 두 분만 남아 있게 되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 6, 25 때 그곳으로 피난 가고 흥천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는데 개군면으로 복귀 후에도 어머님과 함께 일 년이면 여러 번씩 찾던 곳이다. 지금은 개군면 향리 선영으로 통일되어 그때 모습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참고: http://blog.daum.net/0113508344/4719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