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효명세자와 김유근

효명세자(효명세자)가 김유근(金逌根)에게 보낸 편지 8

추읍산 2011. 3. 7. 21:53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29

 

38××30

 

 

伏問近日軆侯更若何 伏慕區區 當以何日辭書乎 姪如姑保前狀 他何可達乎 胎

복문근일체후갱약하 복모구구 당이하일사서호 질여고보전상 타하가달호 태


紙伏呈者 下諒伏望耳 餘不備白

지복정자 하량복망이 여불비백


卽日 甥姪 拜上

즉일 생질 배상


요사이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그립습니다. 어느 날에 사직서를 내십니가? 저는 이전과 같이 지내며 다른 것은 무슨 말씀드릴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태지(胎紙: 別紙)를 드리오니 하량하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즉일(卽日) 생질(甥姪)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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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1827년 4월 27일~6월 10일 사이에 쓴 편지입니다.

김유근이 1827년(순조 27) 4월 27일 평안도 관찰로 명받아 부임하기 위해 행차 도중 서흥에서의 불행은 마음의 병이 되어 상당히 괴로워하였음은 이후 순조실록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이는 황산 할아버지의 큰 불행입니다.


체차를 허락받아 귀경하고 사직서를 제출하셨는데 이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대리청정하는 효명세자는 병조판서 등 직책을 계속 내리고 출사를 종용하였는데 믿음직한 외숙의 조력을 받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유근은 사직서를 계속 제출하고 시골집에 칩거하면서 괴로워하셨는데 숼 시간을 주지 않는 생질을 원망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6월 10일 김유근이 서연에도 참여치 않음을 질책하면서 외직인 수원부 유수로 삼았는데 이는 도성을 떠나 시간을 갖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라는 효명세자의 배려로 생각합니다. 수원유수의 직책을 수행 중인 김유근을 다음 해인 1828년 4월 17일 이조 판서로 삼음으로써 귀경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체직을 청하였는데 허락지 않던 효명세자도 5월 13일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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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역사관> 소장  도록 p159

김유근의 사직소를 한데 묶은 사리의(辭吏議)가 전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