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석교(石郊)로 가서 기뻐서 짓다

추읍산 2011. 3. 19. 12:42

出石郊 喜賦

 

석교(石郊)1)로 가서 기뻐서 짓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無端三載隔林廬    무단히 삼 년 동안 이 집을 비웠으니

莫怪溪山久誚余    당연히 자연산천 오래도록 나를 꾸짖지

落種居然成大樹    떨어진 씨앗 어느새 큰 나무 되었고

養苗忽已作多魚    기르던 싹 어느새 벌써 부쩍 자랐네

 

空慙白首塵緣重    늙어서도 속세 인연 무거워 부끄럽고

堪笑靑門宿計疎    오래된 청문(靑門) 약속 엉성하여 우습구나2)

鷄犬依依猶識主    졸졸 따르는 닭과 개 주인을 알아보니

人情那得不懷初    사람 마음도 어찌 처음을 그리워하지 않겠는가


敢將未懇達嚴廬    감히 보잘것없는 정성으로 엄려(嚴廬)3)에 가서

上塚恩殊特揆余    벌초하니 은혜가 특히 내게 내렸지

才短家聲慚謝鳳    재능 없어 가문의 명성에 누가 되니 사봉(謝鳳)에게 부끄럽고4)

慟深風樹泣皐魚    풍수지탄 슬픔 깊어 고어(皐魚)처럼 울부짖네5)

 

田園幾廢思何益    전원이 황폐하니 무슨 도움 될 것이며

民國俱勞術亦疎    백성과 나라 고통 받는데 재주 또한 엉성하구나

明發遲遲成獨坐    더디고 더딘 새벽에 홀로 앉아

白頭還憶我生初    흰 머리로 내 태어나던 처음 다시 생각하네


蒙恩此日臥田廬    은혜 입어 오늘 전원에서 지내니

收拾神心覓舊余    정신을 수습하여 예전의 나를 찾네

千畝受明齊宿麥    너른 들판 양기 받아 겨울보리 익어가고

一行知樂任遊魚    물고기 한 무리 즐거움 알아 제멋대로 노니네

 

蓮含多子凌波穩    연밥 많은 연꽃 물결위에 조용하고

竹護稚孫迸地疎    죽순 품은 대나무 드문드문 솟아 있네

十里鄕園歸未得    십리 고향 돌아갈 수 없어

林慙澗媿奈當初    산수에 부끄러우니 당초 마음 어쩔거나


一宿今將別舊廬    하룻밤 자고 지금 옛 집을 떠나려 하니

奔忙何事又關余    바쁜 일은 무엇 때문에 또 나와 관계 되는가

主恩未報攀弓劒    성상의 은혜 갚지 못한 채 궁검(弓劒)을 부여잡고6)

私計無成媿鳥魚    개인적 계획 이루지 못해 새와 물고기에 부끄럽네

 

十里靑山如此近    십리 푸른 산 이처럼 가까운데

數莖白髮已全疎    몇 가닥 흰 머리 성근지 이미 오래

桑麻說好頻傾耳    농사일 잘 되었다 하여 자주 귀 기울이니

野服何時却遂初    언제 농사꾼 차림으로 처음 뜻을 이룰까


東去中泠有弊廬    동쪽 중령(中泠)에 가면 낡은 집 있으니

先人析産昔分余    아버님 생전 재산 나누어 주신 것이지

豐年優足充家食    풍년 들면 넉넉하게 집안 곡식 보태주고

暇日尋常送澤魚    한가한 날이면 늘 물고기 보내지

 

老去功名眞齷齪    늙어갈수록 공명심은 정말 자잘해지고

向來學業漸荒疎    종래의 학업은 점차 거칠고 엉성해지네

更無粟帛餘身後    죽은 뒤 물려줄 재산 없으니

素戒何由不負初    어떻게 하면 처음 뜻을 저버리지 않을까 늘 경계하네



1) 석교(石郊) :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집인 석교정사(石郊精舍)가 있던 곳이다. 김창업(효종9-경종1)은 본관 안동, 자 대유(大有), 호 가재(稼齋)․노가재(老稼齋)이다. 김수항(金壽恒)의 넷째아들로, 어려서부터 창협(昌協)·창흡(昌翕) 등 형들과 함께 학문을 익혔다. 1681년(숙종7)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한양의 동교송계(東郊松溪; 현 성북구 장위동)에 은거하였다. 1689년(숙종15)에 기사환국(己巳換局)이 발생하자 포천 영평산(永平山)에 숨어 살다가 1694년(숙종20) 갑술환국(甲戌換局) 때 다시 송계로 나왔다.


2) 오래된…엉성하네 : 청문(靑門)은 한나라 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이다. 진(秦)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진 소평(邵平)이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 스스로 평민의 신분이 되어 청문 밖에서 오이를 심고 가꾸며 조용히 은거했다. <『사기 』53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여기서는 작자가 소평처럼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려 했던 오래 전 기약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다.

 

3) 엄려(嚴廬) : 보통 임금이 상중(喪中)에 거처하는 곳이다.


4) 가문…부끄럽고 : 사봉은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대문장가 사영운(謝靈運)의 아들인데 문장을 잘 지었고, 그 아들 사초종(謝超宗)도 글을 잘 지었다. 효무제(孝武帝)가 사초종이 지은 뇌문(誄文)을 보고, “초종에게는 확실히 봉모(鳳毛)가 있다.” 칭찬했다. <『남사(南史)』19 「열전」9 사영운 조항 부속 손초종(孫超宗) 조항> 여기서는 작자가 사봉과 달리 명문가 집안의 명성을 이을 만한 재주가 없다는 말이다.


5) 풍수지탄…울부짖네 : 춘추시대 고어(皐魚)가 모친상을 당해 통곡하면서, “나무가 조용해지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시지 않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也]” 하며 울부짖다가 죽었다. <『한시외전(韓詩外傳)』9>

 

6) 성상의 은혜…부여잡고 : 임금의 죽음을 말한다. 용이 수염을 드리우고 내려와 황제(黃帝)를 맞이하자 황제가 올라탔는데 이때에 황제를 따랐던 신하들과 후궁들이 70여 명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오르지 못해 용의 수염을 잡으니 수염이 뽑혀 떨어지면서 황제의 궁검(弓劒)이 함께 떨어졌는데 남은 백성들은 그 궁검을 끌어안고 우러러 바라보았다. <『사기』28 「봉선서(封禪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