紀曉嵐硯銘
기효람(紀曉嵐)1)의 벼루에 대한 명(銘)
김유근(金逌根 1785~1840)
계미년(1823, 순조23, 39세)
癸未春 家大人以龍首硯賜小子曰 此爲紀文達舊藏 余欲有銘而未果 今以畀汝 宜銘之 小子拜受 退而爲銘曰
계미년(1823) 봄에 아버님께서 용수연(龍首硯)을 나에게 주시면서, “이 벼루는 문달공(文達公) 기윤(紀昀)의 소장품이다. 내가 명(銘)을 지으려 했으나 미처 짓지 못했다. 지금 이것을 너에게 주니 신중히 명을 지으라.” 하셨다. 내가 절을 올린 뒤에 이것을 받고, 물러나와 명을 지었다.
紀氏之石 기효람의 벼루는
玉溫珉貞 옥처럼 따스하고 견고하네
物以人貴 물건은 소유한 사람에 의해 값이 높아지니
我愛其名 나는 기효람의 명성을 사모하네
君子攸錫 아버님께서 그것을 내게 주신 것은
匪美伊榮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영예 때문이니
永用保之 영원히 사용하고 보존하여
無忝所生 아버님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
1) 기효람(紀曉嵐) : 효람은 기윤(紀昀)의 자(字)이다. 기윤은 호 석운(石雲), 시호 문달(文達)이다. 하북성(河北省) 직예(直隷) 헌현(獻縣)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1754년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1773년부터 약 10년 동안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의 총책임자로 편집사업을 주도했고, 그 해제인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의 편찬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집필한 내용을 모두 직접 보완·교정하였다. 사고전서 편찬에 온 정력을 쏟았기 때문에 학술상의 저서는 많지 않은데, 『요재지이(聊齋志異)』의 유행에 개탄하여 지은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는 청대 수필의 대표작이며, 시문집으로 『기문달공유집(紀文達公遺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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