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주와 장화식
[洪澈周, 張華植]
홍철주 선생이 사용하던 호패와 요대 부싯돌
장화식(張華植)은 고종 13년에 의금부 도사로 입관한 이래 한성판윤, 육군참장을 거쳐 1904년 8월 통신원 회판이 되었고, 다시 1905년 3월 30일에 민상호에 이어 통신원 총판에 올랐다. 장화식은 특히 일본의 통신권 강탈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05년 4월 1일 한일통신기관협정이 체결되자 “통신은 나라의 눈과 귀다. 눈과 귀가 없으면 사람이 어찌 살겠는가”라며 통신주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또한 통신원의 인계를 둘러싼 일본측 인계위원장과의 몇 차례 회담에서도 번번이 교섭을 거부하며 저항했다고 한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83259&cid=42962&categoryId=4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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