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4, 김좌근은 효명세자를 흉지에 쓰도록 압박하고 이웃인 명당에 부친 김조순을 암매장했는가?

추읍산 2019. 3. 20. 09:30

효명세자가 흉서한 1830년(순조 30)은 김좌근이 급제전이고 부친(김조순), 큰 형님(김유근), 둘째 형님(김원근 1786 - 1832)이 생존해 있을 때다. 미약하여 장례절차를 주도할 입장이 못된다. 전후한 두 기록을 보자

○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가 모후 순원왕후를 위해 베푼 진작례에 김좌근은 고양군수다(클릭 http://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AGE&search_div_id=CP_AGE004&cp_code=cp0603&index_id=cp06030037&content_id=cp060300370001&print=Y). 인척 되는 분 모두 참석했으니 특혜는 아니다.

○ 1834년(순조 34) 11월 13일 순조실록을 보면 지사 조만영(趙萬永), 영명위 홍현주(洪顯周), 창녕위 김병주(金炳疇), 판돈녕 김재창(金在昌), 공충 감사 김재삼(金在三), 상의원 첨정 김좌근(金左根), 부사과 박호수(朴鎬壽)에게 모두 별입직(別入直) 할 것을 명하였다.

1830년 효명세자 붕어(崩御)를 전후 기록이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자의 장례절차는 법도에 따랐을 것이고 최고에 길지를 찾았을 것이고 장례날이 8월 4일이다. 김조순은 외손자인 효명세자께서 붕어한지 2년, 1832년 4월 3일 卒 했다

◉ 영화속에서 지관 박재상이 효명세자 묘지가 흉지라고 이웃한 명당을 말하나 무시됐고 그의 집은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에 의해 불태워지고 가족은 죽었다니 아무리 재미 끌어 관람객을 모으기 위함이라지만 가상이라도 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이웃이 명당이고 그리고 그 자리에 김조순을 암매장하였다는 이야기인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