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7, 1840년대는 풍양조씨 세도정치기다

추읍산 2019. 3. 20. 11:00

효명세자가 1830년 붕어하고 13년인 1843년 이후 펼쳐지는 주요 줄거리 즉 1840년대는 김좌근이 정국을 주도할 수 없었다. 세칭 안동김씨 1차 세도정치는 1804년부터 1839년 기해박해 전이다. 김조순은 1832년 별세했고 2년 후인 1834년에는 순조께서 붕어(崩御) 하셨다. 순원왕후는 여덟 살의 헌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에 나서고 이때 큰 오빠 김유근(金逌根)과 6촌 오빠인 김홍근(金弘根)의 보필(輔弼)을 받았다. 김유근은 1837년 중풍으로 실어증이 왔다. 1839년 일어난 기해박해는 안동김씨로부터 세도를 빼앗으려는 풍양조씨 조만영(풍은 부원군) 일파가 일으킨 것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840년 12월 17일 김유근이 4년간 병을 앓다가 운명했다. 그리고 순원왕후는 8일 후인 12, 25 수렴청정을 거둔다. 이후 풍양조씨 조만영, 조인영이 전면에 나서고 주도한다. 김홍근(金弘根)도 1842년 운명한다. 판서급인 金左根, 金興根이 金逌根, 金弘根을 대신하고자 하더라도 정이품이고 정국을 주도할 수 없었다. 이른바 풍양조씨 세도기간이기 때문이다. 1849년 헌종이 별세하고 철종이 즉위하면서 세도는 다시 안동김씨에게로 돌아왔다. 엄밀이 따져 김좌근이 힘을 쓰던 시기는 영의정을 세 번이나 오른 1850년대 철종 재위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