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글/文谷 金壽恒

큰외삼촌에 대한 제문

추읍산 2020. 3. 28. 15:22
한국고전종합DB

祭伯舅文      

      
유세차 을묘년(1675, 숙종1) 2월 기축삭(己丑朔) 20일 무신에 생질 의정부 좌의정 김수항이 삼가 술과 과일 그리고 시수(時羞 제철에 나는 음식)를 갖추어 올리고, 아들 창집(昌集)을 대신 보내어 감히 근고(近故) 마전 군수(麻田郡守) 김공(金公)의 영령께 고합니다.

아 슬프도다 / 嗚呼哀哉
내가 젖니조차 아니 갈 적에 / 我生未齔
갑자기 어머니를 여의고 / 奄失天只
불쌍한 고아가 되어 / 零丁孤苦
외가에서 양육되었지 / 育于外氏
자나 깨나 길러 주시니 / 顧復恩勤
오직 외할머니만을 믿었고 / 祖妣是恃
또 외삼촌에 의지했는데 / 亦賴我舅
친자식처럼 돌보아 주셨지 / 撫視如子
홍산에서 모친 모실 때나 / 鴻縣板輿
섬강의 외가 선영에서 / 蟾江桑梓
어디든지 저를 데려가시며 / 在處提挈
항상 안타깝게 여겼지 / 愍念不置
내 누님과 여동생도 / 我姊我妹
실로 함께 의지했는데 / 實同依倚
나 때문에 하늘이 돕지 않아 / 繇我不天
또 외할머니를 여의고 / 又喪祖妣
나는 아버지에게로 가니 / 我歸鯉庭
저 남쪽 지방이었지 / 于彼南紀
만남과 이별 슬픔과 기쁨에 / 聚散悲歡
옛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시큰 / 撫跡酸鼻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 重還京洛
직접 뵈니 꿈결 같았지 / 相對夢寐
다행히 남은 생애 보전하여 / 幸保餘生
각기 지난 일 슬퍼했지 / 各愴往事
공만이 나를 보살펴 주심 / 唯公眷我
시종토록 변치 않았지요 / 靡替終始
친애할 이를 사랑했으니 / 愛其所愛
진실로 효성을 확대함이라 / 寔推孝思
어리석은 내가 / 以我蒙騃
외람되이 명성과 지위 훔쳤으니 / 叨竊名位
불초한 외손이라 부끄러워 / 慙非宅相
닮았다고 감히 말하리오마는 / 敢云酷似
생전에 영양을 받지 못해 / 榮有不逮
빠른 세월을 비통해하여 / 痛纏隙駟
공은 나를 볼 때마다 / 公每見我
슬퍼하면서도 기뻐했지 / 旣悲且喜
위양의 읊조림 / 渭陽之詠
그 뜻에 의미가 담겨 있구나 / 有味其旨
어버이처럼 보호받으며 / 瞻依託庇
평생 백 년을 기약했네 / 期以百祀
공은 아름다운 자질 있어 / 公有美質
관대하고 순수했으며 / 寬夷和粹
공은 두터운 덕 있어 / 公有厚德
미더우며 화락했으니 / 子諒樂易
고을에선 후덕한 어른이요 / 於鄕長者
관직에선 순량한 관리였네 / 在官循吏
우애하고 공경한 행실 / 友悌之行
친인척과의 화목한 우의 / 睦姻之誼
옛사람과 비교해 봐도 / 方之古人
또한 부끄러움 없고 / 亦云無愧
뭇사람에게 들어 보면 / 聽於衆口
그 누구도 험담이 없었지 / 曾莫有訾
천부적인 자질이 풍부하니 / 旣豐厥賦
응당 복을 받아야 했는데 / 宜受其祉
어린 시절 크나큰 화란 당해 / 夙嬰奇禍
집안에 생존한 사람이라곤 없어 / 闔門無類
외톨이 몸뚱이를 / 孑孑塊肉
절간에 비밀리 숨겼다가 / 祕跡蕭寺
밝은 태양이 하늘에 떠올라 / 翔陽麗霄
원통 씻기고 은전이 내려졌지
/ 冤雪恩貤
깎였다가 회복되지 않음이 없으니 / 無剝不復
하늘의 이치를 징험할 수 있네 / 可徵天理
고을 사또 정도에 멈추어 / 屈於郡邑
큰 은택 베풀지는 못했지만 / 雖嗇大施
부디 백년 장수 누리시어 / 庶享期頤
길이 복록 누리셨어야 했는데 / 永綏福履
아 우리 외삼촌이여 / 嗟嗟我舅
어찌 여기에서 그치셨습니까 / 胡止於此
수명은 덕에 걸맞지 않았고 / 壽不稱德
지위는 기국을 채우질 못했네 / 位不充器
예전 공이 마전에 계실 적에 / 曩公在麻
제게 편지를 부치시어 / 有書我寄
구차하게 이어 가는 목숨이 / 自云苟延
계축년을 다시 만났으니 / 歲又周癸
이 세상에 산들 뭐 즐겁겠는가 / 在世何樂
다시 살 뜻이 조금도 없구나 / 無復生意
말씀이 무척이나 서글퍼서 / 辭甚愴楚
편지 보고 이상히 여겼더니 / 見之疑異
얼마 뒤 위중하다 들었는데 / 俄聞病亟
갑자기 부음이 도착해서 / 遽以訃至
예전 말씀 돌이켜 생각하니 / 追念前言
스스로 헤아려 그러신 것입니까 / 豈其自揣
눈 한 번 돌리는 순간에 / 轉眄之頃
만사가 이미 끝이 났습니다 / 萬事已矣
묘소의 풀 두 번 묵었으니 / 墓草再宿
훌륭한 모습 영영 묻혔구료 / 儀刑永閟
나는 나랏일에 매여 있다가 / 余縻鞅掌
거듭 진퇴양난을 당하여 / 重遭跋疐
강가에서 칩거하니 / 屛蟄江干
도성과는 약수처럼 멀었지 / 弱水城市
상기의 날짜 임박했는데 / 迫此祥朞
영전에 슬픔 펼 수 없었고 / 莫展靈几
때늦은 제전조차도 / 後時之奠
또한 직접 술잔 올리지 못했네 / 亦不親觶
이승과 저승에서 한이 맺혀 / 恨結幽明
은정과 의리 홀로 저버렸기에 / 孤負恩義
글을 지어 심정 고하지만 / 綴文告情
어찌 조금이나마 펼 수 있으리오 / 詎抒一二
끝없는 비통한 심정을 / 無涯之慟
두 줄기 눈물에 부칩니다 / 寄之雙淚
아 슬픕니다 / 嗚呼哀哉
부디 흠향하소서 / 尙饗
[주-D001] 큰외삼촌 : 
김천석(金天錫)을 가리킨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명휴(命休)이다. 《문곡집》 권21에 〈외삼촌 마전군수 김공 행장〔舅氏麻田郡守金公行狀〕〉이 실려 있고, 《농암집》 권27에는 〈광흥창 수 김공 묘지명〔廣興倉守金公墓誌銘〕〉이 실려 있다. 1673년(현종14) 2월에 김천석이 마전군(麻田郡) 관아에서 별세하였는데, 당시 나이 70세였다.
[주-D002] 어머니 : 
원문의 ‘천지(天只)’는 《시경》 〈백주(柏舟)〉에 “하늘 같은 어머님이 이토록 사람 마음 몰라주시는가.〔母也天只, 不諒人只.〕”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D003] 외가에서 양육되었지 : 
김수항의 외가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5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외조모의 손에 자랐다. 강원도 원주 안창(安昌)에 외가가 있었다.
[주-D004] 자나 …… 주시니 : 
원문의 ‘고복(顧復)’은 《시경》 〈상유(桑柔)〉의 ‘시고시복(是顧是復)’으로, 자나 깨나 부모가 자식 걱정함을 말한다. ‘고(顧)’는 신상(身上)을 돌봄이며, ‘복(復)’은 그 일을 반복함을 이른다.
[주-D005] 홍산에서 …… 때나 : 
원문의 ‘판여(板輿)’는 부들방석을 깐 노인용 수레로, 흔히 지방관이 부모를 맞이하여 봉양할 때 사용하는 수레를 말한다. 1635년(인조13) 11월 24일 김천석은 홍산 현감(鴻山縣監)에 임명되었다. 《承政院日記 仁祖 13年 11月 24日》
[주-D006] 섬강(蟾江) : 
원주 부근의 강물 이름이다.
[주-D007] 나는 아버지에게로 가니 : 
김수항은 1640년 봄에 부친 김광찬(金光燦)을 따라 안동(安東)으로 가서 조부 김상헌(金尙憲)에게 수학하였다.
[주-D008] 외손이라 : 
원문의 ‘택상(宅相)’은 외손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위서(魏舒)는 어려서 외가인 영씨(寧氏)에게 양육되었는데, 집의 풍수를 보는〔相宅〕 사람이 “귀한 외손이 나올 것이다.〔當出貴甥.〕”라고 예언하였는데, 훗날 위서가 사도(司徒)에까지 올랐다. 《晉書 卷41 魏舒列傳》
[주-D009] 영양(榮養) : 
자식이 출세하여 좋은 의복과 맛난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이른다.
[주-D010] 위양(渭陽) : 
춘추 시대 진 문공(晉文公)이 즉위 전 망명 시절에 매형인 진 목공(秦穆公)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떠날 적에, 목공의 아들로서 당시 태자였던 강공(康公)이 문공을 전송하며 “내가 외숙을 전송하려고 위수 북쪽에 이르렀다네.〔我送舅氏, 曰至渭陽.〕”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詩經 渭陽》 흔히 위양은 외삼촌을 뜻한다.
[주-D011] 어버이처럼 : 
원문의 ‘첨의(瞻依)’는 어버이처럼 항상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모한다는 말인데, 《시경》 〈소반(小弁)〉에 “눈에 뜨이나니 아버님이요, 마음에 그리나니 어머님일세.〔靡瞻匪父, 靡依匪母.〕”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D012] 어린 …… 당해 : 
김천석의 부친은 김래(金琜)이고, 조부는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부친 김제남(金悌男)이다. 인목왕후가 영창대군(永昌大君) 의(㼁)를 낳았는데, 선조가 승하한 지 6년이 지난 계축년에 간신 이이첨(李爾瞻) 등이 광해군의 뜻에 영합해서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끼고 반란을 계획한다고 무고하여 김제남을 비롯한 일족이 멸족당하였다.
[주-D013] 밝은 …… 내려졌지 :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영창대군, 김제남의 관봉(官封)을 회복한 일을 가리킨다. 《국역 인조실록 1년 3월 15일》
[주-D014] 깎였다가 …… 없으니 : 
박괘(剝卦)에서 복괘(復卦)로 순환되는 것을 말한다. 9월에는 오음(五陰)의 박괘, 10월에는 순음(純陰)의 곤괘(坤卦)가 되었다가 11월의 동지가 되면 양 하나가 생겨 음이 처음 사라지는 복괘를 이룬다.
[주-D015] 계축년을 다시 만났으니 : 
김천석(金天錫)은 나이 10세 때에 계축년(1613, 광해군5)의 화란을 당하여 집안이 전복(顚覆)되었다. 그 후 60년이 지나 다시 계축년이 되자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에게 “내가 모질게도 죽지 않고 살아 다시 이 계축년을 보게 되었구나.”라고 말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려 별세하였다. 《農巖集 卷27 廣興倉守金公墓誌銘》
[주-D016] 나랏일에 매여 있다가 : 
원문의 ‘앙장(鞅掌)’은 《시경》 〈북산(北山)〉에 “누구는 제멋대로 편하고, 누구는 나랏일로 정신없이 분주하누나.〔或棲遲偃仰, 或王事鞅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D017] 약수(弱水)처럼 멀었지 : 
삼신산의 하나인 봉래산(蓬萊山)과는 거리가 3만 리나 떨어져 있어 지극히 먼 거리를 표현할 때 ‘봉래약수(蓬萊弱水)’라 하며, 서로의 거리가 매우 멀어 만날 수 없는 경우를 ‘약수지격(弱水之隔)’이라고 한다. 《書言故事 地理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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