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계를 중심으로
시조(김선평 901 - ) 이래 사시던곳을 추적하는데 일부 기록이 남아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한다. 아래와 같이추리하였다.
ⓛ 안동부內의 강정촌(江亭村)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종통의 맥을 이어오기를 450년인데 오랜 세거지인지는 이전 기록이 없어 분명하지 않다. 1390년에 작성된 안동부(安東府) 김득우(7世 金得雨) 호구 자료에는<戶前中顯大夫典農正金得雨年五十九本安東父正議大夫判禮賓寺事致仕義故祖承仕郞衛尉注簿同正資>라는 글자가 보인다. 따라서 족보상 7世 김득우의 출생 연도가 1331(고려 忠惠王 1) 년임을 알 수 있다.
김득우(金得雨 1331 - ?), 김혁(8世 金革) 부자는 안동부 내의 강정촌[江亭村(歸來亭 있는 곳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옹정골길 19-4]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② 김득우 부자는 강정촌를 떠나 안동 풍산현의 불정촌(佛頂村)으로 이주한다. 소요산(素耀山 현 소산리)과 5리 정도로 이웃인데 전농정공(김득우)의 配는 풍산유씨로 유난옥(柳蘭玉)의 손녀사위인데 그분은 선조조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의 8대조다.
③ 素耀山(오늘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김득우의 손자 김삼근(9世 金三近 1390 - 1465) 대에 이르러 불정촌에서 인근의 소요산(素耀山)으로 이주했는데 당시 금산(金山)으로 불리어 지던 곳으로 오늘의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다. 이후 안동김씨 판관공(김계권)파의 <만세반석>으로 자리하는데 세상에서는 <素山金氏>로 부르고 있으며 이를 모태(母胎)로 안동, 파주, 서울, 양주, 여주 등 경향 일대에 그 후손들의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돈소당(비안공 구택으로 敦素堂), 양소당(養素堂), 청원루(淸遠樓), 태고정, 동야고택(東埜古宅), 삼구정 등이 남아 있다. 남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안동에서 유일한 노론의 맥을 이어왔고 본향으로 하는 그 후손들이 조선 중후기에 끼친 영향이 커 영욕이 함께한다.
④ 장의동 터전
창의문 아래 장의동은 제평공 권맹손(1390-1456)의 서울 터전으로 그분은 판관공 김계권의 장인이시다. 1408년(태종 8) 문과에 합격하고, 1429년(세종 11)에는 문과 중시에도 합격한 수재였다. 특히 그는 예문관 대제학으로서 세종조의 문병을 좌우하였으며,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과 같은 문사와의 교유도 깊었다. 김계권이 대를 이어 장의동에 자리하는데 권맹손이 있었음을 유의한다. 높이 날라올라 넓고 멀리 바라본 혜안! 조선 중후기 외손인 안동김씨 300년을 생각합니다.
김계권은 모두 5자[學祖, 永銓, 永勻, 永錘, 永銖]를 두었는데, 제5자 김영수가 바로 청음의 고조 장령공(掌令公)이다. 영전은 사헌부감찰, 영균은 진사, 영추는 수원부사, 영수는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따르면 문음의 혜택은 아들, 손자는 물론 사위, 외손에까지 두루 미치고 있었습니다.
1458년 김계권이 졸하자 配 예천권씨께서 가족을 이끌고 안동 풍산의 금산촌(오늘의 풍산읍 소산리) 낙향하였는데 그 기반은 그대로 남겨두었을 것이고 이는 판관공의 막내 장령공의 두 아들 영(瑛 1475 - 1528)과 번(璠 1479 -1544)이 물려받으니 그 유명한 청풍계와 무속헌으로 금관자 서말은 싹트고 있었다.
⑤ 판관공의 계부 주부공(主簿公) 三友는 불정촌에서 종송(種松)으로 옮기니 지금의 上里派다. 서애6대조(柳從惠)가 상리 종송동(種松洞)에 살다가 하회로 이거 할 때 살던 집을 손서인 9세 주부공에게 인계하고 갔다고 <終天永慕錄>에서 서애선생(西厓先生)은 증언하고 있다.
⑥ 판관공의 아우 정헌공(김계행)은 불정촌?에서 길안면 묵계리로 옮겼다고 전하나 장질 학조와 연배가 같아 1431년 금산태생으로 추정한다. 성년 무렵인 1450년경 묵계리로 살림을 나셨다고 생각된다.
⑦ 또한 예안 서촌파가 있으니 승지공의 숙제(叔弟 진사공 珣)의 터전이다 .
위와 같이 정리 하였는데
7世 김득우((金得雨 1331 - ? ) 8世 김혁 부자 | 9世 비안공 김삼근 金三近 1390 - 1465 |
10世 판관공 金係權 - 1410 - 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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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알 수 없지만 시조이래 거주지는 안동부내(安東府內) 수남(水南) 강정촌(江亭村)이다. [歸來亭 있는 곳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옹정골길 19-4] |
강정촌에서 안동 풍산현 남양불정촌(豊山縣 南陽 佛頂村)으로 이주하였다. 안동 풍산읍 하리리로 소산리와는 5리정도로 지근이다. |
풍산 서면 금산촌(오늘날의 풍산읍 소산리)으로 옮겨 정착하고 대를 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돈소당(비안공 구택, 양소당, 청원루, 태고정, 삼구정 등이 남아 있고 역골에는 판관공과 그 아들 4형제의 묘역이 있다. | 장의동 터전의 기초를 닦으셨다. 이곳은 두 손자(瑛, 璠)로 이어졌는데 삼당공 영은 청풍계, 서윤공 번은 무속헌이다. 청풍계는 문충공 김상용의 터전으로 무속헌은 문정공 김상헌이 이어 받았는데 위 두곳과 그 주변은 안동김씨 출사의 상징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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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공(主簿公) 三友는 불정촌에서 종송(種松)으로 옮기니 지금의 上里派다. | 판관공의 아우 정헌공(김계행 1431 - 1517)은 소요산(금산)에서 안동 길안면 묵계리로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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