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항 17

탁본 현장을 안내하다

안동김씨 김수항(諱 壽恒) 묘역은 남양주시 이패동 산 11에 있다. 이 곳 일대는 개발계획이 진행되어 멀지 않아 신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다. 멀리 대구에서 김부일 씨가 올라왔는데 그분은 안동김씨 감찰공파 후예로 조상님의 흔적을 탁본에 담고 있다. 어제(8월 16일) 긴장마 멈추었는데 이대로 긑나기를 바란다. 탁본에는 해당 종가 담당직손의 허락을 받고 진행하였는데 필자가 안내하였다. 그간의 일정을 보면 강원도 원주의 김탄 행, 여주시 김창집, 김제겸, 김성행, 이천시 풍고 김조순, 그리고 어제는 남양주시에 있는 김수항, 김수흥 묘역을 안내하여 과정을 담는다. 오후 1시경 문곡(김수항) 탁본을 마치고 이어 부사공(휘 상관은 비석 상태 안 좋아 미루고), 퇴우당(휘 수흥, 탁본하였다고 연락이 옴) 묘역을 안내하..

현주 이공 소한 이 칠월 열엿샛날 미호에서 배를 띄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제봉의 시를 차운하다

聞玄洲李公 昭漢 於七月旣望 泛舟渼湖 次高霽峯韻 듣건대 맑은 강에 술 실은 배 띄웠으니 / 聞道淸江泛酒船 초가을 열엿새라 달 밝은 날씨였다지 / 新秋旣望月明天 뱃머리에 퉁소 부는 나그네 있었으리니 / 舷頭想有吹簫客 꿈속에서 분명 학이 된 신선 만났겠지 / 夢裏應逢化鶴仙 적벽과..

할아버님의 〈늦봄에 심양 땅에서 두견새 울음을 들었다〉를 삼가 차운하다〔伏次王父暮春瀋陽聞杜鵑韻〕

문곡집 제1권 / 시(詩) 191수 촉나라 망제 두견새 되었다고 들었더니 / 曾聞蜀帝化爲鵑 천년이라 잠총 일마다 아득해라 / 千載蠶叢事杳然 변방 너머에서 날아듦은 연유 있을 텐데 / 塞外飛來應有意 한낮의 피울음 전례가 없구려 / 日中啼血更無前 둘째 수〔其二〕밤마다 가슴 아파 두견새 ..

안창에서 외가의 선영을 참배한 뒤의 감회〔安昌 拜外家先塋感懷〕

daum 지도에서 사진 찍었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는 연흥 부원군 의민공 김제남의 선영이다. 문막 이웃이며 섬강이 흐른다. 문곡 김수항은 어머니 연안김씨가 운명(殞命)하시자 외조모 초계정씨(연흥 부원군의 子婦)에 의해 이곳(안창리)에서 1633년부터 양육되었는데 1640년 외조모 마저 돌아가시자 의탁할 곳이 없어 그때(2월)는 할어버지(청음 김상헌)께서 병자호란 후 안동 풍산 청원루에 계셨는데 아버지(청음의 부친 김광찬)에 의해 안동으로 가셨고 할아버지(청음)로부터 교육을 받으셨다. 같은 해 11월 할아버지(청음)는 청의 심양으로 압송되셨다. 문곡집 제1권 / 시(詩) 안창에서 외가의 선영을 참배한 뒤의 감회〔安昌 拜外家先塋感懷〕 아득해라 취병산아 / 依依翠屛山 은은해라 섬강 물아 / 隱隱蟾江水..

같은 외가 김수항과 정명공주

혈통으로 보는 정명공주(부군 영안위)와 김수항(어머니 연안김씨) 가문 김제남(연안김씨 연흥부원군) 1562년(명종 17) - 1613(광해군 5) 인목대비(1584 - 1632 宣祖의 繼妃) 김래(1576 -1613 配 초계정씨 정명공주(1603 - 1685 夫君 영안위 홍주원) 연안김씨(1596 - 1633 김광찬의 配, 청음 김상헌의 子婦)로 필자의 12대조 할머니로 혈통을 이었다. 홍태망, 홍만용, 홍만형, 홍만희, 홍태량, 홍태육, 홍만회. 풍산홍씨 추만공(홍영)파 김수증, 김수흥, 김수항(1629 - 1689) 안동김씨 문정공(김상헌)파 후손은 홍국영, 홍봉한, 홍인한, 혜경궁 등 후손은 김창집, 김창협, 김원행, 김조순 등 ○ 안동 김씨 을미보(2015년) 7권 첫 장 광찬(光燦) 편에는 다음..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떤 마음일까?

안내하는 글은 문곡[文谷 金壽恒. 1626-1690. 시호 : 文忠) 1)]께서 기사환국으로 진도로 유배되고 후명(後名 : 예전에,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죄인에게 사약(賜藥)을 내리는 일을 이르던 말)을 듣고부터 5일간 가족과의 나눈 대화입니다. 이를 셋째 아들 휘 창흡께서 기록하였는데 이를 가문에서 한글로 필사, 네려오던 것 중 하나로 현 안동 김씨 대종중 회장이신 김위현 님께서 간직하고 계시다가 최근 알아듣기 쉽게 편역하셨고「기사유교」라는 책으로 선보였습니다. 문곡께서는 1689년(숙종 15) 장희빈의 소생 윤(昀)을 원자로 책봉함에 있어 반대한 서인 측이었습니다. 기사년(1689년)에 숙종의 어명으로 태조 이성계의 초상을 전주에 모셔놓고 돌아오던 중 남인의 탄핵으로 진도로 유배되었고 그해 3월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