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수정으로 만든 술잔에 대한 명(銘)

추읍산 2011. 3. 20. 10:55

수정으로 만든 술잔에 대한 명(銘)1)

 

 

김유근(金逌根 1785~1840)

 

계해년(1803, 순조3, 19세)

 

歲癸亥 家大人以水晶杯一具 賜小子曰 此先王之所嘗寵賚於賤臣者也 今以贈汝 汝其寶藏焉 夫酒之爲物 所以薦天地而享鬼神 羞王公而讌賓友 別長幼之序 通上下之情 非酒 無以成禮 顧不盛歟 然而自古沈湎無節 滅德敗度 不凶于國 卽禍于家者 盖亦鮮矣 可不懼哉 可不戒哉 杯者 所以斟酒之物 而斟之爲言也 所以量其多少之謂也 量之而不節 何用斟爲 故一獻之禮 賓主百拜 君子欲以禮節之也 勉之哉 吾憂汝之不能節而及於亂也 小子拜而祗受 退而敬述銘曰


계해년(1803)에 아버님께서 수정(水晶)으로 만든 술잔 일습을 내게 주시면서, “이것은 선왕(정조正祖)께서 미천한 나에게 하사하신 것이다. 이제 이것을 너에게 주니 너는 보배로 여기고 잘 간직하거라. ‘술’이라는 것은 하늘의 신과 땅의 신께 제사지낼 때 올리고 귀신께 제사지낼 때 바치며, 왕공(王公)을 접대할 때와 손님과 벗에게 연회를 베풀 때 쓰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의 순서를 구별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마음을 통할 때에는 술이 아니면 예禮를 이룰 수 없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냐. 그러나 예로부터 술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여, 덕을 잃어버리고 법도를 무너뜨려 나라를 망치지 않으면 집안에 화를 부르는 경우가 또한 적지 않았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이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일이냐. ‘술잔’이라는 것은 술을 따라 담는 도구이고, ‘따르다[斟]’는 말은 술의 양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헤아려 절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따르다’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한 차례 술을 올리는 예(禮)에서도 손님과 주인이 백 번 절을 하는 것은, 군자가 예로써 절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한 말을 명심하고 힘써라. 나는 네가 술을 적당히 조절하지 못해 정신을 잃는 지경에 이르지나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아버님께 절을 올리고 삼가 받은 후 물러나와 조심스럽게 명(銘)을 지었다.


猗水晶之杯兮       아! 수정으로 만든 술잔이여

寔內府之珍藏兮    이것은 궁궐의 보배인데

聖人之所賚兮       임금께서 하사하신 것이네

荷昔日之龍光兮    그 옛날 임금의 총애를 받은 것이네

 

父以是傳子兮       이것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시고

又詔告之煌煌兮    경계하여 깨우쳐주시는 말씀도 빛나니

永用而保我兮       항상 이 술잔을 사용하여 나를 보호하고

與雲仍而無彊兮    대대손손 전하여 끝없이 이어지게 하리라



1) 명(銘) : 술잔, 그릇, 세숫대야, 종 등의 기물에 글을 새겨 넣거나 그것들을 대상으로 글을 짓는 것, 또는 그 새기거나 지은 글인데, 대체로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