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쏟아지는 이 시간 푸르고 푸르러 끝없는데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나 친구 되어 하늘을 날고 싶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뛰어놀던 소년은 주름살은 파이고 오늘에 나 있음이 시대를 잘 타고났음이런가? 이룬 것은 작고 잃은 것은 크니 모두가 여리고 못난 내 탓이다. 지난 일은 기억이라는 창고 속에 남아있어 모두일 수는 없지만 생각나 이것만은 남겨야겠다 하는 것은 오늘에 되살린다. 더 녹슬고 무디어지기 전에 말이다. 침해도 예방할 수 있고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1950년대 6, 25 전쟁 때는 제2 선영인 흥천면 효지리에서 피난시절을 보냈음은 지난 글에서 밝힌 바 있다. 흥천 초등학교 시절 사이렌 소리 울리면 공부시간에도 뛰는 소개훈련이라고 있었다. 1953년 봄, 3학년 본향인 개군면 향리로 복귀하니 휴전 전이다. 전쟁은 또래 판도를 바꾸어 놓았으니 같은 학년도 나이 차이 많음은 그 산물이다
그 어렵던 시절 고향의 9 월을 생각한다. 개군 초등학교 4학년 이후일 것이다. 큰 병들고 논으로 나간다. 메뚜기떼 벼 잎새와 이삭 사이사이로 붙어 푸드득푸드득 날고 있다. 손으로 줍는다고 해야 할까? 병 가득가득하다. 가마솥에 넣어 불 지피니 빨갛게 익어 고소하다. 밑반찬으로 때론 가계에 보탬까지 되었단다
지금쯤에는 청대라고도 있었다. 주렁주렁 콩깍지 꺾어 불 지피니 시커멓게 그을린 깍지 속에 콩알 얼마나 맛있던 지 그을린 입 까맣구나. 개구리 청대라고도 있었어 회초리로 개울가 풀속 뒤져 사정없이 내려치니 쪽쪽 뻗는다. 두 다리 떼어 하얀 속살이 드러나고 이 역시 불속에서 익어 그 맛을 잊을 수 가없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를 못해 부끄럽다 어찌 아니하리오. 강남 갈 채비를 갖추는 제비들은 전선줄 위를 쉼터로 하고 저 하늘을 떼 지어 날고 있다. 이른 봄 새끼 제비 둥지 속 먹이 받아먹던 모습 저 하늘에서도 가족단위 떨어지지 않고 날고 있을까? 긴 여행, 바다 건너 오가는 길, 잘 다녀와 내년 봄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한다. 밭에선 조와 수수가 탐스럽게 고개 숙이고 있다. 조금 있으면 알밤 떨어지는 소리 후드득 ~ 후드득 ~ 들릴 것이다.
벼 이삭은 아물 지도 않았는데 배고프니 어쩌라. 누렇게 물들어 간다지만 아직인데 깍지 끼어 흘어 솥에 찌고 널어 말리고 돌절구에 빻았지. 이렇게 쌀이 되어 배고픔 속 어쩔 수 없음인데 추궁 기라고나 해야 할까?
오늘날의 벌초는 요즈음부터 추석 전이지만, 우리 집의 예를 들면 1985년 까지는 음 7월 20일(8월 20일 경)이다. 마을 분과 함께 하는 벌초는 무더울 때로 그 사랑 잊을 수가 없다. 동방예의지국 살려 조상님 묘역 깨끗하게 단장하자고요. 오늘에 나 있음에 감사하고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지요. 쐐기와 벌에 쏘이고 때론 장수 말벌도 조심해야 한다. 이르면 자라니 두 번 할 순 없고 지금 때가 알맞을 것이다.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현대화가 바꾸어 놓은 풍속도 고향에선 차들 즐비해 좋아진 것인가? 아닌가?
맞이하기 위한 설렘은 찾아볼 수 없다. 편리함의 추구는 끝없고 미풍양속은 어디로 갔는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