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발문(跋文)

추읍산 2011. 3. 21. 09:38

 

발문(跋文)1)


夫鐘磬簫笙 各有其聲 編之而後 成十二律 是以 風雅頌之刪述 三百五篇 而六義備矣 內舅黃山金文貞公 雅好詩 補袞之暇 會賓友 輒觴詠焉 當時多有膾炙句篇 而曾不收聚 所存無幾 表弟商書 屬余抄選 余以空踈不能承當 然亦不敢辭 乃抄錄詩六百二十三首雜著三十五篇 共爲四編 昔文同讀淵明集云 案頭遺集有先生 渙然文章蔚爾于後世 則余於公敢以是寓慕仰之忱焉

上之四年丁卯孟春 甥侄(姪)南秉吉謹跋


 종(鐘)과 경(磬)과 소(簫)와 생(笙)이 각각 제 소리를 가지고 있으나, 한데 어우러진 뒤에야 음악다운 음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 많던 『시경(詩經)』의 시들이 305편으로 정리된 뒤에 ‘여섯 의미[六義]’2)가 완비될 수 있었다. 내구(內舅; 외삼촌) 황산(黃山) 김 문정(金文貞) 공께서는 평소에 시를 좋아하셨다. 임금님을 보필하는 여가에 손님과 벗들을 모아 자주 약주를 드시며 시를 지으셨다. 당시에는 회자되던 구절이 많이 있었는데, 모아두신 적이 없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표제(表弟; 외사촌 동생)3)인 판서 ○○가 나에게 남은 글 중에 선별하라고 부탁했다. 나는 학문이 보잘 것 없어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또한 감히 사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 623수와 잡저 35편을 뽑아 기록하여 모두 4편으로 만들었다. 옛날에 문동(文同)의 「독도연명집(讀陶淵明集)」시에, “책상에 있는 유집(遺集)에 선생이 남아 있네.”4)라고 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문장이 성대하게 후세에 남아 있으니, 나도 문정공에 대해 감히 문동의 말로 존경하는 마음을 붙인다.

      주상전하 등극 4년째 정축년(1867) 초봄에 생질 남병길(南秉吉)5)이 삼가 발문을 쓰다.


 

 

1) 발문(跋文) : 원문에는 ‘발문’이라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역자가 다른 글과 구분하기 위해 넣었다.


2) 여섯 의미[六義] : 시경 「大序」에서 말한 풍(風)·부(賦)·비(比)·흥(興)·아(雅)·송(頌)이다. 시(詩)의 성질에 따라 풍(風)·아(雅)·송(頌)으로 나누고, 표현법에 따라 흥(興)·부(賦)·비(比)로 나눈 것이다.


3) 표제(表弟; 외사촌 동생) :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의 아들로 김유근에게 입양된 김병주(金炳㴤, 1824-1888, 순조24-고종25)를 가리킨 듯하다. 김병주는 자 범일(範一)·범화(範和)·범초(範初)이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4) 문동(文同)의…남아 있네 : 문동은 북송(北宋) 문인으로, 자는 여가(與可)이다. 그는 소식(蘇軾)과 절친한 벗이었는데, 시·초사(楚辭)·초서·화에 모두 뛰어나서 사절(四絶)로 일컬어졌다. 문동의 『丹淵集』9 「讀淵明集」에, “吏人已散門闌静 公事才休耳目清 牕下好風無俗客 案頭遺集有先生 文章簡要惟華衮 滋味醇醲是太羮 也待將身學歸去 聖時争奈正升平” 했다.


5) 남병길(南秉吉) : 1820-1869(순조20-고종6), 본관 의령, 일명 상길(相吉), 자 자상(字裳), 호 육일재(六一齋)․혜천(惠泉)이다. 남구순(南久淳)의 아들이며 남병철(南秉哲)의 아우로, 당시 수학과 천문학의 천재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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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황산유고의 옮김을 마감한다. 남아 있는 5책의 초고가 분실된 卷之一과 二를 최대한 복원하기를 하는 바람이다. 집필진은 본란에서도 우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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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해제

3)에서 김병주(金炳㴤, 1824-1888, 순조24-고종25)를 가리킨 듯하다. 김병주는 자 범일(範一)·범화(範和)·범초(範初)이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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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김병주(金炳㴤, 1827-1887, 순조 27-고종 24) 자는 범초(範初), 호는 小山, 시호는 孝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