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645

盧稷의 墓表

노직의 묘표(墓表) 정경세(鄭經世) 자 : 사형(士馨) 국조인물고 권13 경재(卿宰) 공의 성은 노씨(盧氏)요 휘(諱)는 직(稷)이며 자(字)는 사형(士馨)이요 교하(交河) 사람이다. 고려(高麗) 태조조(太祖朝) 때 노강필(盧康弼)이 태조를 도와 통일의 공을 세워 벼슬이 태자 태사(太子太師)에 이르니, 공은 곧 그 후손이다. 고조 휘 이산(異山)은 판군기시사(判軍器寺事)요, 증조 휘 철강(鐵剛)은 통정 대부(通政大夫) 안동 부사(安東府使)에 증(贈) 이조 참판(吏曹參判)이며, 조부 휘 언방(彦邦)은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에 증 이조 판서(吏曹判書)인데, 대대로 예법(禮法)을 이어오니 이웃에서 본을 떴다. 고(考) 휘 홍우(弘祐)는 바른 몸가짐과 문예(文藝)가 있었으나 벼슬길에는 크게 마음쓰지 않아 ..

발길 돌려 <앙덕 별장>을 찾아가다

김익진(金翼鎭 1884 -1943) 전방앙덕고장병서 (轉訪仰德故庄幷序) 발길 돌려 을 찾아가다 서문을 아울러 붙이다. --------------------- 庄在江上而今屬 閔丙奭 而空虛頹落不勝悵惆 庄邊有藥泉 令人飮之而病具愈 장재강상이금속민병석 이공허퇴락부승창추 장변유약천 영인음지이병구유 ✶ 별장은 강 위에 있었고, 지금은 민병석[閔丙奭 ]이 차지하였는데, 빈터로 쇠퇴하여 무너져 있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별장 주변에는 약수가 나오는 샘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마시면 병이 다 나았다. --------------------- 步步風光轉入佳 山來不盡水無涯 滾滾江聲盈左耳 深深雲氣濕雙鞋 보보풍광전입가 산래불진수무애 곤곤강성영좌이 심심운기습쌍혜 걸음마다 풍광이 나갈수록 아름다워 산에 오니 끝이 없고 물 또한 끝없..

진외가 풍양조씨 족보

안동김씨 문정공파 족보로 翼鎭에서 配풍양조씨 --- 父吏參康夏 라고 하였는데 잘못으로 父吏參昌夏로 바로 잡는다. 昌夏의 생가 큰형님 康夏께서는 吏曺判書를 역임하신 분이시다. 풍양조씨 조강하 가문의 족보이다. 조강하[趙康夏 1841년(헌종 7) - 1892년(고종 29)]는 두 동생을 두었는데 가운데 寧夏는 趙寅永 (1782 - 1782)의 손자로 昌夏는 작은댁 秉鐸 앞으로 입적되었다. 양자로 얽히고설킨 계보 그때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특히 종가댁을 중히 생각했었는데 이런 미풍양속은 더 이상 존속하지 않을 것으로 심히 우려된다. 할머니 (조동희)는 昌夏의 따님으로 생가 두 큰아버지(康夏, 寧夏)께서 계신다. 친정이 양평군 서종면 무네미(문호리)라고 들었는데 묘역과 후손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