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 294

고조 할아버지 소산 김병주(小山 金炳㴤)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 2021, 4, 4 첨부 people.aks.ac.kr/front/imageView/image.aks?type=TY1&imgFileName=/TY1/MN/JS2_V10/MN_JS2_V10_072.jpg&exmId=EXM_MN_6JOc_1851_012932 『국조방목(國朝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9]) ------------ 1851년 (辛亥 철종 2..

여주군 흥천면 효지리 선영

이곳에는 저의 6대조 참의공 김용순(諱 龍淳), 그리고 5대조 황산 김유근(諱 逌根)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개군면 향리 선영으로 통일되었지만 30년 전만 해도 저희는 그곳을 1년이면 여러 차래 다녔습니다. 이곳도 저희 가문 의 정신이 깃든 곳이기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이 제2 선영으로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 추기 2022, 8, 30 훗날 효지리 선영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밝혀졌기에 그 부분을 옮긴다. 며느리(諱 元根 配 완산이씨)를 移葬하며 - 김조순(諱 祖淳) 諱 元根(1832년 순조 32로 부친 諱 祖淳과 같은 해12월 27일 47세로 짧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큰 형님 휘 유근이 종백부인 諱 龍淳 앞으로 입후해 영안 부원군의 ..

김조순과 그 큰아들 김유근

https://kostma.aks.ac.kr/FamilyTree/PersonView.aspx?personid=pd024512 ▒▒한국학자료센터 - 인물관계정보▒▒ 성명 남구순 처 안동김씨(南久淳 妻 安東金氏) - kostma.aks.ac.kr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김조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조순(金祖淳, 1765년~183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가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사원(..

[스크랩] 석실서원 터

신안동김씨의 세거지가 셋 있습니다.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와 한양의 장의동(현재 종로구 청운동), 그리고 양주의 석실(현재 남양주시 수석동)입니다. 안동은 육신의 고향이고 장의동은 권력의 중심일 때의 장소입니다. 석실은 권력에서 잠시 물러나 새로운 힘을 기르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장소입니다. 석실은 청음 김상헌(1570~1652)과 관련있는 장소입니다. 광해군 시대에 은거해 있던 안동김씨들은 인조반정(1623) 이후 권력에 진입합니다. 그리고 안동김문의 철학과 신념을 보여준 것이 병자란(1636)입니다. 청음 김상헌의 9살 많은 큰 형인 선원 김상용(1561~1637)은 강화를 지키다 성이 함락되자 다른 이들은 도망가도 폭약 위에 앉아 불을 당겼습니다. 어쩌면 봉림대군(나중에 효종 임금, 1619..

6대조 할아버지 김용순(金龍淳 |字 施伯 |1754~ 1823)

시조 김선평(金宣平) 김상헌(金尙憲)-광찬(光燦)-수항(壽恒)-창집(昌集)-제겸(濟謙)-달행(達行) 20세 金達行 21세 履慶 履中 履基 22세 明淳 生父 履基 祖淳 龍淳 23세 興根 應根 弘根 左根 元根 逌根 生父 祖淳 24세 炳德 炳始 炳溎 炳冀 炳地 炳㴤 生父 弘根 25세 宗圭 容圭 性圭 用圭 錫圭 定圭 족보상의 金龍淳 ♢字施伯英祖甲戌2月5日生丁酉進士工議癸未4月14日卒贈左贊成 ♢配貞敬夫人豊山洪氏壬申生壬辰8月27日卒父府使配浩祖副正銓輔曾祖參判重疇外祖牧使黃榏本昌原 ♢墓楊平郡介軍面香里山42丁坐合窆表孫男炳㴤撰 6대조 할아버지 김용순(金龍淳 |字 施伯 |1754~ 1823) 7대조 광주목사 김이기의 첫째 아들이다. 1777년(정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여러 관직(주로 지방관)을 거쳐 만년에 잠시 공조 참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