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 294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의 호학정신

출처 : 한국명문 조선조 후기 175개 가문 중에서 문집[유고,유집 포함]이 있는 선비를 가장 많이 낸 10대 가문을 들면 다음과 같다. 의성김씨 관찰사 김성일 부친 김진 가문 약239명, 안동김씨 좌의정 김상헌 조부 김생해 가문 약127명, 반남박씨 좌의정 박세채 고조 문강공 박소 가문 약92명, 전주유씨 병조참판 유치명 선조 유성 가문 약92명, 진성이씨 판의금부사 이효순 선조 이황 가문 약92명, 안동권씨 학자 권두인 선조 우찬성 권벌 가문 89명, 장흥고씨 의열공 고인후 부친 충렬공 고제봉 가문 약82명, 의성김씨 이조참판 김우옹 부친 김희삼 가문 약80명, 해평윤씨 영의정 윤두수 부친 윤변 가문 약80명, 풍산유씨 영의정 유성룡 부친 관찰사 유중영 가문 약77명이다. 서울 명문은 문과급제나 벼슬..

안동김씨 김생해 가문의 아경[참판]급 인물

출처 : 한국명문 김생해 가문의 참판급 인물로 김상준을 먼저 꼽는다. 김상준은 김생해 손자로서 우의정 문충공 김상용과는 동갑내기 사촌 형제지간이다. 또한 좌의정 문정공 김상헌의 사촌 형이다.김상준은 서기 1561년에 태어나 1590년 문과에 급제하여 1609년 형조참판이 되었다. 맏아들 김광욱이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를 지냈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손자가 문과에 급제하여 의주부윤에 올랐다. 이 때의 집안 광경이 아주 좋았다.. 사촌 동생 청음 김상헌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대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신망을 받았고, 절의가 굳세 조정과 백성들에게도 명망이 아주 높았다. 여기에 사촌 김상용이 시문과 글씨에 뛰어나고 도학으로 저명했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성이 함락되자 금지옥엽 같이 귀한 목숨을 꽃..

안동김씨 김상헌 조부 김생해 가문의 문과 급제 위상

한국명문 (2004-05-21 오후 7:44:45) 흔히 장동김씨라고 불리는 안동김씨 김상헌의 조부 김생해 가문의 문과 급제 위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김씨 가문은 비슷한 시기의 한국 175개 가문 중에서 문과 급제자를 약 136명[약간 수치의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냈다. 이 숫자는 조선조 소단위 문중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태풍 사라호와 같은 위력을 지닌 수치이며, KBS 관현악단의 웅혼한 리듬을 타고 울려 퍼지는 "금관자 서말"의 전주곡이다. 오늘날 한 해에 사법 고시와 행정 고시를 단 한 명도 못내는 대학이 있는 반면, 100-200명을 쏟아내는 서울대학이 있다. 후자 대학에는 대한 8도의 준재들이 모여 그들의 기량을 여러 분야에서 자랑하면서 국가에 공헌한 나머지 온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안동김씨"6창"의 곳간

출전: 한국명문 안동김씨 "6창"의 곳간 앞에서 말했듯이 "6창"은 몽와 김창집,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노가제 김창업, 포음 김창집, 택재 김창립을 말한다. "6창"은 안동김씨 금관자 서말의 곳간이다. "6창의 제1곳간은 김창집 집이다. 몽와의 곳간에서는 왕비 3명, 영의정 4명, 좌의정 3명, 판서 13명이 나왔다 "6창"의 제2곳간으로 가보자. 제2곳간은 김창협 집이다. 농암 김창협은 1682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의, 대사간 등을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사사된 후 영평에 은거하다가 갑술옥사로 호조참의에 임명되고 대제학, 예조판서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 유학의 대가로 시문에 능했다. 아버지 김수항이 대제학을 지내고 아들이 또다시 대제학에 임명되었으니 부자 대제학의 영광을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