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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영세불망비

GC80010483 金炳㴤永世不忘碑 직제학 김상국병주 영세불망비 역사/전통 시대 유적/비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 조선/조선 후기 엄형섭,황대일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관련 사항 시기/일시건립 시기/일시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현 소재지성격관련 인물재질크기(높이, 너비, 두께)관리자 1827년 - 김병주 출생 1858년 10월 24일 - 김병주 규장각 직제학 임명 1861년 9월 - 김병주 영세불망비 건립 1887년 - 김병주 사망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 비석|선정비 김병주 돌 100㎝[높이]|36㎝[너비]|15.5㎝[두께] 울산광역시 중구청 [정의]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동 내황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병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김병주(金炳㴤)[1827~..

주말 탐방

근래 주말이면 큰아들(정현)의 안내를 받고 있다. 향곡과 덕소 주변의 볼 곳을 찾아 나서는데 장마가 주춤한 토요일 마침 찾아온 리완(손자), 三 代가 삼패동 한강 시민공원에서 한 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데려다 줄 겸 마석 (둘째)에 잠시 들렀고 나오다 차석리 기계유씨 묘역, 묘적사 등 2일간의 주말을 보냈는데 순서대로 올린다. 7월 25일 토요일 26일 일요일 조욱[趙昱 1498(연산군 4 -명종 12) - 1557(명종 12)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경양(景陽), 호는 용문(龍門)·보진재(葆眞齋). 아버지는 판관 조수함(趙守諴)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춘양군(春陽君) 이래(李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6년(중종 11)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조광..

옛 터전 우물가에서

22칸 ㄷ자 조선 기와집 나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뜯겨 옮겨온 집 줄이고 줄였다는데 엉성하게 맞추어 비는 새고 기울었습니다 쥐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옹달샘은 솟아오르고 작고 작은 두레박질에 사랑을 퍼 날랐았습니다 층층시하 어머님의 노고 쩍쩍 달라붙는 엄동설한 삼복더위 한 여름에도 쉴틈이 없었습니다 벌 나비 떼 모여드는 우물가 징검다리 놓았습니다 새콤달콤 석류 가득한데 앵두 대추 주렁주렁입니다 나 어린 시절이 맞는가? 잡초에 묻혀 있는 옛터에는 오동나무 그리움이 쌓였습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돛단배를 은하수에 띄움은 그때 그 안에 나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의 여름

추읍산 아래 남촌 나 어렸을 적이 그립습니다 칙폭칙폭 ~~ 뿡 ~ 산 넘어에서 들려오고 동그라미 두 날개에 달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넜습니다 풍덩 뛰어들던 물가 무지갯빛 물보라가 피는데 물고기가 따로이지 않았습니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웃기 따라 망태기 가득한데 틈새 꾸구리 덥석입니다 무리 짓는 피라지들 용용이지만 어항 안 은빛 가득합니다 보글보글 매운탕 끓는 소리 소주잔 기울이며 크 ~ 다지고 커갑니다 추읍산 아래 香谷(향리)은 삼복(三伏)이 즐겁습니다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일구어온 터전 상전벽해 되었습니다 티는 버리고 옥은 가꾸어 자자손손 언제까지이길요 얘들아 놀자 ~ 얘들아 놀자 ~ 기억이라는 창고 열고 나, 그리움 찾아 마주합니다

비 오는 아침 녘

주룩주룩 빗소리 예보되어 있었지 나 어린 시절 비바람에 꺾이는 비닐우산과 파고드는 우비가 있었다네 행여 휩쓸리지 않을까? 조심조심 개울을 건넜지 십 리 등교(登校) 길 되돌아올 때도 있었어요 날씨도 종시속(從時俗)인가? 마른장마일 적 많았는데 때론 물 폭탄에 논밭이 잠긴 적도 있었지 장마철 끝났다는 八月에도 태풍에 곳곳 휩쓸렸고 유비무환 교훈으로 받았습니다 7월도 끝을 향해 달린다 비가 내리고 있다 제법 양이 많을 듯 순간을 밝히는 빛 우르릉 ~ 꽝 ~ 우르르 ~ 꽝 不義를 불태우소서 노아의 방주에는 사랑만이 흐릅니다 정의의 씨앗을 뿌리소서 가꾸고 열매 맺어 주 하느님 지으신 세상 아름답고 동그랗게 그리자

수종사 탐방

답답하고 무료한 오후 정현 엄마 시골집에 다녀오고 정현 동행하여 남한산성길을 드라이브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양주시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를 찾았는데 19시로 해는 서산을 넘었지만 낮의 여운이 남았다. 경내를 촬영하고 은행나무 쪽에 있는 종각에서 스님 타종하고 있다. 산사의 저녁 종소리가 운길산 가득하고 두 물줄기 따라 흐르리라. 다산 정약용이 오르내리셨던 산길은 경사가 심하여 아찔하길 여러 번이다. 차는 주차시켜놓고 걸어서 등정함이 좋을 것임을 쓴다. 어디를 가나 울울창창 초록에 쌓였는데 안팎이 어지럽다.

서미동(西薇洞)을 다녀와서

하늘 아래 첫 동네에는 은자(隱者)들이 찾아들었지 아득한 옛날 이야기 풍경(風磬) 소리 들려오고 은자암(銀子巖)에 담긴 지혜 자자손손(子子孫孫) 이어지리니 갈고닦아 그 광채 끝이 없으리이다 어리운 장군 바위 수호신 되어 우뚝합니다 소통(疏通)을 도출하는 大義 사랑이란 울타리 안 머물러 이어왔고 이어갈 것입니다 꼬끼오 ~ 꼬끼오 ~ 산골마을의 기상 나팔소리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굶고 아픈 이웃은 없는가? 나누는 삶 홀로이지 않습니다 아침해가 떴습니다 우애를 다지는 밥상 노고지리 우짖는 깊은 산골에선 논밭에서 해 뜨고 해가 집니다 황폐화를 가져온 내우외환 깊이깊이 새겨 유비무환입니다 두 분 정승(政丞) 1)의 흔적 예비하신 터전이 분명합니다 세월은 흔적마저 지우려는가? 농환재(弄丸齋) 2)는 찾지 못했고 木石..

은자암 이야기

2020, 6, 12일 안동김씨 역사문화 답사팀은 오후 안동시의 소산 마을에서 흔적을 찾았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하룻밤 유숙할 곳으로 김모현 삼당공파 회장님의 학가산 기슭(보문산), 중대바위(장군바위) 아래에 있는 서미동(西薇洞) 시골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학조대사(燈谷 1432 - 1514)께서 한때 머물르셨다는 중대사(中臺寺) 흔적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두 정승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서애 유성룡(柳成龍 1542 - 1607)이 58세에 농환재(弄丸齋)라는 초가를 지어놓고 만년을 보내시다가 64세에 운명(殞命) 하셨습니다. 또한, 청음 김상헌(諱 尙憲·1570 -1652)은 병자호란 후 몇 칸 초옥을 지어놓고 4년간(1637 -1840) 울분을 달랜 곳입니다. 서미동 마을 가까이 이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