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김병기는 부친(金左根)을 살해했는가? 영화에서는 명당의 기를 받아 새왕조를 꿈꾸는 김병기로 나온다. 숨겨놓은 조부(김조순) 유골은 그 힘이 다해 명당에는 부친 김좌근이 묻혀야 한다. 자기 중심으로 새 왕조를 열기 위하여 부친(김좌근)을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흥선이 가야사를 차지하기 전이니 영화속 1843년경이란 말..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11, 회평군의 진실 박재상과 함께 김좌근 서고에 들어가 묘도를 훔치는 과정에서 떨어트린 안경이 빌미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데 회평군은 누구이고 그 진실을 알아보자. 민진용의 옥안 [閔晉鏞─獄案] 요약 1844년(헌종 10)에 일어난 반역사건. 언제 1844년 누가 민진용 ·박순수(朴醇壽) ·이원덕 무엇을 반..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10, 장동김씨(김좌근을 주축으로)의 조상묘들은 왕릉이었다고 박재상은 숨겨진 서고에서 묘도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는데, 장동김씨 즉 김좌근의 조상묘들은 왕릉이었다! 장동 김씨는 왕릉을 파묘한 다음 국왕의 관 위에 조상들의 관을 암장하고 다시 봉분을 덮은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실에 박재상과 흥선군은 더..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9, 김좌근 부자와 흥선대원군 파락호의 처지에 있던 흥선군이 그의 저택을 방문하자 재정적으로 후원하였으며 처지가 궁한 그가 석파란으로 알려진 난초화를 가져오면 이를 받고 소정의 금액을 지불해주기도 하였다. 흥선군을 귀찮게 여긴 다른 사대부가와는 달리 흥선군에게 용돈, 노잣돈을 줘서 돌려보내기도 했다..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8, 헌릉 주위 땅과 김좌근 그리고 흥선군의 행적 주위의 땅은 왕실의 소유로 특별 관리되었을 것이다. 차지하기 위해 백성들을 내쫓다니 근거가 무엇인가? 기본을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정전(正殿)을 찾은 헌종 그러나 신료(臣僚)들은 모두 김좌근 생일잔치에 가 있었다. 이때 흥선은 초대받지 못했음에도 상갓집 개 노릇을 하고 조롱 속 김병기 가랑이 밑을 기었다. 흥선은 왕족이고 김좌근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 분이다. 아들 또한, 같음이니 허구에 찬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라는 책에서 따온듯하다. 거짓으로 속일 수 없거늘 무엇을 얻고자 함 이런가? 흥선군을 볼 수 있는 조정(朝廷)의 흔적 1850년대는 이른바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을 때다. 철종실록 1852년(철종 3) 7월 10일에 여론을 대변하는 홍문관에서 상소(부교리 金永秀)하였는데 종친(宗親)..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7, 1840년대는 풍양조씨 세도정치기다 효명세자가 1830년 붕어하고 13년인 1843년 이후 펼쳐지는 주요 줄거리 즉 1840년대는 김좌근이 정국을 주도할 수 없었다. 세칭 안동김씨 1차 세도정치는 1804년부터 1839년 기해박해 전이다. 김조순은 1832년 별세했고 2년 후인 1834년에는 순조께서 붕어(崩御) 하셨다. 순원왕후는 여덟 살의 헌종..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6, 김조순의 묘역 김조순은 효명세자의 외할아버지다. 세자가 흉서한지 2년, 1832년 4월 3일 별세했다. 임진년(순조 32, 1832년) 4월 기묘일(3일)이니 향년 68세이다. -- 임진년 6월에 여주 효자리(여주시 흥천면 효지리)에 공을 장사지냈고, 병신년(헌종 2, 1836년)에 백석동으로 옮겼다가 신축년(헌종 7, 1841년)에 다..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5, 김조순이 지은 효명세자의 지문 지문(誌文)에, "우리 연덕 현도 경인 순희 주상 전하(淵德顯道景仁純禧主上殿下)께서 왕위에 오르신 30년 경인(庚寅) 5월 6일(임술)에 왕세자(王世子)가 병으로 희정당(熙政堂)의 서협실(西夾室)에서 훙서(薨逝)하였으니, 춘추(春秋)가 22세였다. 성상(聖上) 및 왕비(王妃)가 호통(號慟)하고 ..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4, 김좌근은 효명세자를 흉지에 쓰도록 압박하고 이웃인 명당에 부친 김조순을 암매장했는가? 효명세자가 흉서한 1830년(순조 30)은 김좌근이 급제전이고 부친(김조순), 큰 형님(김유근), 둘째 형님(김원근 1786 - 1832)이 생존해 있을 때다. 미약하여 장례절차를 주도할 입장이 못된다. 전후한 두 기록을 보자 ○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가 모후 순원왕후를 위해 베푼 진작례에 김좌근은 고..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
3, 효명세자의 장례 6월 27일 : 묘지를 양주 천장산 유좌로 하다 간산(看山)한 대신(大臣) 이하를 소견(召見)하였다. 도제조(都提調) 정만석(鄭晩錫)이 말하기를, "여러 지사(地師)들과 다시 상세하게 살펴보았는데, 지사 박상발(朴祥發)·이현(李玹) 등이 모두 말하기를, ‘양주(楊州) 천장산(天藏山) 유좌(酉坐).. 남기고 싶은 글/명당이라는 영화 201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