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645

10, 장동김씨(김좌근을 주축으로)의 조상묘들은 왕릉이었다고

박재상은 숨겨진 서고에서 묘도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는데, 장동김씨 즉 김좌근의 조상묘들은 왕릉이었다! 장동 김씨는 왕릉을 파묘한 다음 국왕의 관 위에 조상들의 관을 암장하고 다시 봉분을 덮은 것이다. 이 충격적인 사실에 박재상과 흥선군은 더..

8, 헌릉 주위 땅과 김좌근 그리고 흥선군의 행적

주위의 땅은 왕실의 소유로 특별 관리되었을 것이다. 차지하기 위해 백성들을 내쫓다니 근거가 무엇인가? 기본을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정전(正殿)을 찾은 헌종 그러나 신료(臣僚)들은 모두 김좌근 생일잔치에 가 있었다. 이때 흥선은 초대받지 못했음에도 상갓집 개 노릇을 하고 조롱 속 김병기 가랑이 밑을 기었다. 흥선은 왕족이고 김좌근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 분이다. 아들 또한, 같음이니 허구에 찬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라는 책에서 따온듯하다. 거짓으로 속일 수 없거늘 무엇을 얻고자 함 이런가? 흥선군을 볼 수 있는 조정(朝廷)의 흔적 1850년대는 이른바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을 때다. 철종실록 1852년(철종 3) 7월 10일에 여론을 대변하는 홍문관에서 상소(부교리 金永秀)하였는데 종친(宗親)..

4, 김좌근은 효명세자를 흉지에 쓰도록 압박하고 이웃인 명당에 부친 김조순을 암매장했는가?

효명세자가 흉서한 1830년(순조 30)은 김좌근이 급제전이고 부친(김조순), 큰 형님(김유근), 둘째 형님(김원근 1786 - 1832)이 생존해 있을 때다. 미약하여 장례절차를 주도할 입장이 못된다. 전후한 두 기록을 보자 ○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가 모후 순원왕후를 위해 베푼 진작례에 김좌근은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