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彝齋) 늙은이에게 주다 寄彝叟 이재(彝齋) 늙은이에게 주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鬱鬱煩襟撥未能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 떨칠 수 없어 嗒然終日小欄憑 온종일 멍하니 작은 난간에 기대 있네 男兒何必懷鄕里 사나이가 하필 고향을 그리워하나 車馬還須共友朋 말 수레는 필시 벗과 함께 사용.. 남기고 싶은 글/황산과 그 문우들 2012.06.16
발문(跋文) 발문(跋文)1) 夫鐘磬簫笙 各有其聲 編之而後 成十二律 是以 風雅頌之刪述 三百五篇 而六義備矣 內舅黃山金文貞公 雅好詩 補袞之暇 會賓友 輒觴詠焉 當時多有膾炙句篇 而曾不收聚 所存無幾 表弟商書 屬余抄選 余以空踈不能承當 然亦不敢辭 乃抄錄詩六百二十三首雜著三十五篇 共爲..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십분(十分)에 대한 잠(箴) 十分箴 십분(十分)에 대한 잠(箴)1) 김유근(金逌根 1785~1840) 當食減一分 먹을 때는 한 푼을 줄이고 當義加一分 의리를 따질 때는 한 푼을 더하고 當取少一分 얻을 때는 한 푼을 덜 받고 當與多一分 줄 때는 한 푼을 더 주고 當辱耐一分 치욕스러울 때는 한 푼을 참아내고 當怒愼一分 화..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상(床)에 대한 명 床銘 김유근(金逌根 1785~1840) 北山峩峩 북쪽 산은 우뚝하고 淸溪潾潾 맑은 시내는 투명하네 昔我故人 옛날에 내 벗이 爰宅溪濱 시내 가에 터를 잡았는데 奕世公卿 대대로 그 집안 공경(公卿)들께서는 不厭其貧 가난을 마다하지 않으셨지 及余之幼 나는 어릴 때에 相與比鄰 ..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노가재(老稼齋)의 「화수도(花水圖)」에 쓰다 題花水圖 노가재(老稼齋)의 「화수도(花水圖)」에 쓰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1831년(신묘, 순조31, 작자 47세) 果然流水成何事 秪[祗]是飛花不近人 此余夢中詩也 戊子秋 得稼齋先生舊宅 略加修葺 臨池構亭 扁以花水 盖取詩語而志夢也 今年春 又得先生手寫花水圖一幅 其筆意復與余詩境 髣髴相似 眞奇..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제명기(題名記)」에 대해 쓰다 書題名記 「제명기(題名記)」에 대해 쓰다 김유근(金逌根 1785~1840) 乙未夏 主上殿下命舘閣諸臣 纂修純宗大王實錄 諸臣承命開局 刪述撰次 越四年戊戌閏四月始竣役 起辛酉止甲午 彙爲惇史 合附錄一編 共計三十五卷 嗚呼 我先王三十四年 盛德大業 治法政謨 將與天壤俱弊 賤臣何敢贅辭焉 至若摠裁以..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오순정(五詢亭)을 다시 짓는 것에 대한 기문 五詢亭重建記 오순정(五詢亭)1)을 다시 짓는 것에 대한 기문 김유근(金逌根 1785~1840) 병신년(1836, 헌종2, 작자 52세) 李景國尙書按箕藩之翌年 馳書於其友人黃山金曰 營之西有所謂五詢亭者 去歲灾 方謀重建 子其爲我記之 余發緘而思之 夫樓觀臺榭之有名於國中者 固不可自我而廢之 至若此亭也 雖以眺望..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작은 벼루에 대한 명 小硯銘 작은 벼루에 대한 명 김유근(金逌根 1785~1840) 溫如玉 온화하기가 옥과 같으니 覿髣髴 볼수록 옥처럼 느껴지는구나 莫說端材與歙品 단연(端硯)1)인지 흡연(歙硯)2)인지 따지지 말라 騷人持此爲長物 문인(文人)이 지니면 좋은 물건 되니 1) 단연(端硯) : 중국 광동성(廣東省) 고요현(高要縣) 동남쪽..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이재(彝齋)의 벼루에 대한 명(銘) 彛齋硯銘 이재(彝齋)1)의 벼루에 대한 명(銘) 김유근(金逌根 1785~1840) 伴螢雪 반딧불과 눈을 짝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2) 宜子孫 자손을 훌륭하게 만드는 법 我今銘之 내가 지금 이렇게 명을 지었으니 不可諼 그 의미를 잊지 말기를 1) 이재(彝齋) : 작자의 절친한 벗 권돈..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
임금님이 하사한 만호배(㻴瑚杯)에 대한 명 內賜㻴瑚杯銘 임금님이 하사한 만호배(㻴瑚杯)에 대한 명 김유근(金逌根 1785~1840) 斷飮易 술을 끊기는 쉽지만 節飮難 절제하며 마시기 어렵네 無多酌我 내게 자꾸 술 따르지 말라 禍之端 재앙의 시작이니 기증유물 도록/황산유고 2011.03.21